모바일 게임의 닻 내림 기법

닻 내림 효과(anchoring effect)

 

실험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연구진은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A그룹에게는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가 ‘600m’ 보다 높을까요, 낮을까요?”라고 질문했고, B그룹에게는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가 ‘14,000m’’보다 높을까요, 낮을까요?’라고 질문합니다. 그리고 예상 높이를 적어보라고 합니다. 과연 실험 결과가 어땠을까요?

또 다른 실험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 연구진은 사람들에게 주민등록번호 뒤 두 자리를 물어봅니다. 만약 주민등록번호 뒤 두 자리가 01~49 사이라면 A그룹으로, 50~99 사이라면 B그룹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각 그룹의 사람들에게 두 대의 컴퓨터와 두 병의 와인을 보여주며 예상 가격을 적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각 그룹이 적어낸 예상 가격은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에서 상황에 따라, 특히 정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의사결정은 합리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1]. 바로 위의 두 실험과 같은 상황에서 말입니다.

대니얼 카너먼 교수 (1934~)

 

그리고 실험의 결과는 이렇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를 물은 첫 번째 실험에서 ‘600m’를 기준으로 질문을 받은 A그룹 사람들이 답변한 에베레스트 산의 추정 높이는 평균 ‘2,400m’였고, ‘14,000m’를 기준으로 질문을 받은 B그룹 사람들이 답변한 추정 높이는 평균 ‘13,000m’였습니다 [2]. 그리고 두 대의 컴퓨터와 두 병의 와인의 예상 가격을 적어보라고 한 다른 실험에서는 주민등록번호 뒤 두 자리 숫자가 더 높은 B그룹이 답한 예상 가격의 평균이 A그룹이 답한 예상 가격의 평균보다 더 높았습니다 [3].

닻 내림 효과란 이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인간의 사고와 판단이 처음에 제시된 정보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닻으로 고정된 배가 연결된 밧줄의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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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내림과 순서

 

실생활에서 닻 내림 효과의 사례는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최저가 기준점의 닻 내림 효과입니다. 먼저 의류 매장의 할인 전단을 떠올려 봅시다. 전단에서는 대체로 말도 안 되게 할인율이 높은 의류 상품이나 브랜드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보이도록 크게 강조하여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씩 비싸거나 할인율이 낮은 상품들을 순차적으로 약하게 보여주죠. 고객은 ‘이 브랜드(상품)의 할인율이 나머지보다 크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매장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방문할 때까지 상품이 남아 있을진 모르겠지만..).

가장 저렴하거나 할인율이 높은 브랜드(상품)가 잘 보이도록 강조합니다.

 

두 번째는 최고가 기준점의 닻 내림 효과입니다. 레스토랑 메뉴판을 떠올려 봅시다. 레스토랑 메뉴판 가장 위쪽에는 스테이크나, 코스 요리, 셰프 특선 요리처럼 상대적으로 비싼 요리를 먼저 보여주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비교적 저렴한 코스나 단품 요리를 보여줍니다. 고객은 ‘이 요리에 비하면 나머지는 조금 저렴하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처음에 본 비싼 요리보다는 그 밑의 비교적 저렴한 요리를 주문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단지 ‘비교적’ 저렴할 뿐일지라도).

이와 같이 닻 내림 효과의 사례는 최저가 기준점이냐, 최고가 기준점이냐에 따라 각각 다른 효과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 조건은 고객의 관여도가 높냐 낮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의류 전단지 사례의 고객은 아직 매장에 입장하지 않았고, 레스토랑의 고객은 이미 입장해서 자리에 앉은 상태의 차이가 있는 거죠. 최저가 기준점의 닻 내림 효과는 일단 입장해서 자리에 앉는데 대한 심리적 장벽을 허물고, 최고가 기준점의 닻 내림 효과는 기준점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그럼에도 비싼 상품을 구매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허무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모바일 게임의 닻 내림 기법

 

모바일 게임에서도 닻 내림 효과가 의도된 디자인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Homescape를 비롯한 Playrix사의 3 match 퍼즐 시리즈와 Toon Blast(Peak Games)에서는 유저가 상품을 구매했느냐 구매하지 않았느냐에 따라 상점 팝업에서 상점을 정렬하는 기준이 달라집니다. 아직 매장에 입장하지 않고 입구 주변을 기웃거리는(상품을 최초 결제하기 전) 유저에게는 최저가 기준의 닻 내림 효과로 최초 결제를 유도하고, 이미 입장하여 자리에 앉은(상품을 최초 결제한 후) 유저에게는 최고가 기준의 닻 내림 효과로 더 비싼 상품의 결제를 유도하는 거죠.

지갑에 발들이기까지 자그마치 두 개의 심리 기법이 합쳐진 컴비네ㅇ..(사례 우려먹기가 아닙니다.)

 

또한 두 사례에서 코인 상품, 번들[5] 상품의 각각 가격과 구성을 자세히 보면 중첩 적용된 닻 내림 기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번들 상품의 구성을 보면 기본적으로 코인 상품의 구성 수량에 묶여 있고, 가격이 조금씩 더 비싸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00 코인 기본 상품을 12,000원에 판매한다면 특정 번들 상품(ex: Toon Blast 사례의 Super bundle)을 1,000 코인+추가 상품 구성으로 묶어 기본 코인 상품 가격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비싸게 판매하는 식이죠. 마치 자동차를 구매할 때 옵션을 추가하며 조금씩 비싸게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유저가 이왕이면 기본 코인 상품 가격과 유사하거나 조금 더 비싸지만 구성이 풍성한 번들 상품을 결제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로써 유저는 아반떼 사러 가서 그랜저를 결제하고 나오게 됩니다.

유저 입장에서는 번들 상품 쪽을 구매하는 것이 대체로 현명한 판단 (라이즈 오브 킹덤즈, Lilith Games)

 

시사점

 

최저가, 최고가 기준점의 각 닻 내림 기법을 통해 유저의 최초 결제 시 심리적 장벽이나 더 비싼 상품을 결제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습니다.

1. 최저가 기준점의 닻 내림 기법으로 유저의 최초 결제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허무세요.

2. 최고가 기준점의 닻 내림 기법으로 최고 기준점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그럼에도 비싼 상품을 구매하는 것에 대한 유저의 거부감을 허무세요.

3. 번들 상품의 1차 재화 수량을 1차 재화 기본 상품의 수량과 동일하게 설계하되, 번들 상품의 추가 상품 구성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가격은 기본 상품보다 조금 더 비싸게 설계하여 유저가 이왕이면 번들 상품을 결제하도록 유도하세요.

4. 지갑에 발들이기 기법과 함께 적용하여 효과를 극대화하세요.

 

[1] 모바일 게임의 손실 회피 편향 편 참조

[2] 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저, 김영사, 2018), 사실 실제 실험에서는 주민등록번호가 아닌 사회보장 번호를 활용한 실험이었습니다. 사회보장 번호는 미국 사회보장 법령을 근거로 미국 연방정부가 미국 시민이나 영주권자 등에게 부여하는 9자리 숫자로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와 유사합니다.

[3] 상식 밖의 경제학 (댄 애리얼리 저, 청림출판, 2008)

[4] 기본 재화를 기타 재화와 묶어서 각 재화의 개별 가격보다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묶음 상품

*원문 출처 : https://brunch.co.kr/@jaehyun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