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실험과 모바일게임 메인 로비

쉬나 아이엔가의 선택 실험

 

미국의 심리학자인 쉬나 아이엔가(Sheena Iyengar) 교수는 인간의 선택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한 선택 심리학의 권위자입니다. 그녀가 진행한 수많은 연구 중 특히 ‘선택의 가짓수’에 관한 실험[1]이 꽤 유명합니다.

연구진은 먼저 미국의 한 슈퍼마켓에 두 가지 매대를 만들었습니다. 한 매대에는 6종의 잼을 진열해서 지나가는 손님들이 시식하고 구매할 수 있게 했고, 다른 매대에는 24종류의 잼을 진열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손님이 어느 매대를 더 많이 들렀고 상품을 더 많이 구매했는지 지켜보았죠.

TesaPhotography: https://www.needpix.com/photo/521174/jam-jar-christmas-homemade-cranberry-gift-natu

 

실험 결과 24가지 종류의 잼이 진열된 매대에 손님의 60%가 들렀고 6가지 종류의 잼이 진열된 매대에는 손님의 40%가 들렀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잼 종류가 많은 쪽이 더 유리할 것이라 예상하겠지만, 실제 잼을 구매한 손님의 비율은 24가지 종류의 잼이 진열된 매대가 3%, 6가지 종류의 잼이 진열된 매대가 30%로 6종류 잼을 판매한 매대의 판매율이 10배 가까이 높았습니다.

진열한 상품의 가짓수는 매출 측면에서도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역시 6종류 잼이 진열된 매대 쪽의 매출이 7배 가까이 높았고, 구매 만족도도 더 높았죠. 이에 대해 아이엔가 교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선택지는 정신적인 소음으로 작용해 오히려 선택을 방해하며,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선택이 잘못되었을 때의 실망감을 피하기 위해 주저하게 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를 심리학에서 ‘선택의 과부하(choice overload)’라고 부릅니다. 유사한 맥락으로 심리학자인 제이콥 자코비(Jacob jacoby)는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제한적이며 이 정보량의 범주를 초과하면 문제 해결이나 학습을 방해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2]. TV 프로그램 골목식당에서 백종원씨가 식당 메뉴의 가짓수를 줄여 핵심 메뉴에 집중하라고 출연자들에게 조언했던 기억이 오버랩되네요.

적절한 선택의 가짓수: 청크

 

그렇다면 선택의 과부하를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선택지 혹은 정보의 가짓수는 대체 어느 정도일까요. 이 부분을 이야기하려면 반드시 청크(Chunk)의 개념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아래 알파벳을 읽어보세요.

 

LSDMBCKBS

 

혹시 뭔가 눈치채셨나요? 위의 알파벳은 하나하나를 보면 특별한 의미가 없는 9개 알파벳의 나열이지만, 사실 세 글자씩 묶어서 볼 때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각각 LSD(마약), MBC(방송국), KBS(방송국)으로 묶을 수 있죠. 인지 과학 분야에서 청크(Chunk)란 이처럼 여러 정보를 하나로 묶은 기억의 단위입니다. LSD, MBC, KBS를 모른다면 9개 청크, 세 단어를 아는 사람에게는 3개의 청크로 구성된 문장인 거죠. 그리고 MBC, KBS를 ‘주요 지상파 방송사 중 두 곳’으로 압축한 기억 단위를 ‘스키마(Schema)’라고 합니다. 마치 비디오 압축 코덱과 비슷합니다.

각 알파벳은 개별 정보, 정보를 묶은 단위의 청크, 청크의 코드가 되는 스키마로 구성됩니다.

 

다시 선택 이야기로 돌아와서, 적절한 선택 혹은 정보의 가짓수와 관련된 다양한 이론은 통상적으로 이 청크를 단위로 이야기합니다. 저명한 심리학자 조지 밀러(George Miller) 교수는 인간이 작업 기억에 저장할 수 있는 정보의 한계가 7±2개라고 주장했습니다 [3]. 이를 ‘Magic No.7’이라고 부르며 디자인과 인지 과학,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유명한 개념이 되었죠. 그러나 심리학자 앨런 배들리(Alan Baddeley)나 넬슨 코완(Nelson Cowan) 등의 후속 연구에 따르면 이 7±2라는 숫자는 잘못되었으며, 실제 적절한 숫자는 4에 가깝다고 주장합니다 [4].

 

사실 누구나 쉽게 기억할 수 있는 마법의 숫자가 실제로 존재할까 싶습니다. 오히려 기존 연구들로부터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사람이 특정 정보를 기억하거나 제시된 정보를 기준으로 의사 결정을 할 때, 가능한 선택지나 정보의 가짓수를 청킹(Chunking, 청크의 단위로 의미 묶음을 만드는 행위)을 통해 줄이면 좋다는 것이죠.

 

모바일 게임 메인 로비의 메뉴 청킹

 

관련하여 애플은 HIG(Human Interface Guideline)를 통해 iPhone 하단 탭 바(UITabBar)의 적정 개수를 3~5가지로 권장하고 있습니다 [5]. 한편, 모바일 게임에서도 많은 경우 상점 진입 시 처음 보이는 상품 개수를 3~5개 사이에서 보여주고 더 많은 상품을 보려면 스크롤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솔직히 이런 설계는 비교적 간단한 편입니다. 메인 로비(Main Lobby) 디자인에 비해서는 말입니다.

메인 로비는 유저가 게임을 실행했을 때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공간이며, 게임 플레이 진행도나 재화 보유상태, 서브 콘텐츠나 이벤트 등의 전반적인 게임 정보를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문제는 게임 장르에 따라 이 메인 로비에 적게는 10종 내외의 메뉴 버튼부터 수집형 RPG나 MMORPG와 같은 하드코어 한 장르일수록 20~30가지가 넘는 메뉴 버튼을 한 화면에 배치해야 한다는 점이죠. 그리고 청크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열쇠가 됩니다. 아무리 제공해야 하는 메뉴가 많더라도 유사한 기능이나 중요도를 가진 메뉴끼리 카테고라이징 하여 의미 덩어리를 만들면, 복잡한 메뉴를 가능한 덜 복잡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Rise of Kingdoms(Lillith Games)와 Brawl Stars(Supercell)의 메인 로비 메뉴 청킹 사례

 

Rise of Kingdoms(Lillith Games)나 Brawl Stars(Supercell)의 사례를 보면, 콘텐츠의 중요도나 기능의 유사성을 기준으로 5~6가지로 메뉴를 청킹 하여 제공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Toon Blast(Peek games)나 Candcy crush friends saga (King.com)와 같이 더 캐주얼한 퍼즐 장르에서도 유사한 성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메뉴를 명확하게 청킹 하여 유저에게 제공하면 유저는 각 메뉴를 기억하고 학습하는 것이 훨씬 편해집니다.

비교적 캐주얼한 장르에서의 메뉴 청킹 사례

 

또한 위에 언급한 대부분의 사례에서 메뉴 청킹 시에 주의해야 할 두 가지 요소를 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청킹한 메뉴가 유저에게 명확하게 인지되려면 메뉴의 간격이나 시각적 그루핑이 명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래 사례와 같이 메뉴 버튼의 시각적 그루핑(Grouping)이 명확하지 않으면 유저가 해당 메뉴를 청크 단위로 학습하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메뉴 버튼의 시각적 그루핑(Grouping)이 명확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청킹을 통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코어 메뉴가 정리되었다면, 해당 버튼을 가장 터치하기 쉬운 위치에 배치하고 유저의 눈에 띄게 만들어야 하는 점입니다. 다행히 모바일 환경에서 유저의 엄지 손가락 터치 범위를 고려한 Thumb zone [6]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습니다. 게임 내에서 중요한 메뉴 버튼이라면 Thumb Zone의 안전영역 안에 배치해서 유저의 사용성을 높여야 합니다.

Thumb zone: 엄지 손가락을 사용할 때 터치하기 쉬운 영역

 

카드 소팅

 

작년쯤, 아주 우연한 기회로 애플 본사의 UX 디자이너와 모바일 게임 메인로비 메뉴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당시 필자가 개발에 참여한 게임의 메인 로비 화면을 보고 ‘Terrible'(…)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아 강력한 마상을 주기도 했는데요(…). 수년간 라이브 중이었던 해당 게임의 메인 로비 화면이 아주 복잡하고 정돈되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이겠죠. 다행히도 그녀는 한 가지 팁을 함께 전해주었습니다.

 

“메뉴를 포스트잇에 적어 나열하고 중요도나 기능에 따라 그루핑 해보세요”

카드 소팅 사례 (https://www.dreamerux.com/articles/fycrs9ssjdxrsxdtz2bmh96y8n78t3)

 

이른바 ‘카드 소팅’을 통해 메뉴를 정돈하는 방법을 제안한 것입니다. 카드 소팅이란 유저가 제품 내부의 정보와 구조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준비된 카드를 그룹화해서 표현하게 하는 조사 방법입니다 [7]. 간략한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카드 소팅 프로그램 참여자가 모두 함께 메인 로비에서 유저에게 제공해야 하는 메뉴를 노란색 카드(포스트잇)에 적어 벽과 같은 빈 공간에 붙입니다.

 

2. 유저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기능이나 중요도가 유사한 카드를 묶어서 나열해봅니다. 참여자 간에 많은 대화와 토론이 필요합니다.

 

3. 참여자 간에 카드 그루핑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각 카드 그룹을 표현하는 간략한 단어나 문장을 파란색 카드에 적어 해당 카드 그룹 상단에 붙입니다.

     역시 많은 대화와 토론이 필요합니다.

 

4. 파란색 카드 간에도 유사성이 있는 경우 그루핑 하고, 그룹을 표현하는 간략한 단어나 문장을 분홍색 카드에 적어 그룹 상단에 붙입니다.

 

5. 마지막으로 중요도에 따라 카드 그룹의 나열 순서를 조정해봅니다.

 

미팅 직후 팀원들과 함께 카드 소팅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메인 로비 디자인에 반영하여 게임을 업데이트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메뉴가 한결 깔끔해졌다는 팬덤 유저층의 커뮤니티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죠. 만약 지금 개발하고 있는 게임의 메인 로비 화면이 복잡해서 고민이라면 카드 소팅을 활용하여 메뉴를 정돈해보는 것을 권장합니다.

 

시사점

 

모바일 게임의 유저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제한적이며 특히 메뉴의 선택지가 많은 경우 선택 과부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수십 종의 메뉴를 제공해야 하는 메인 로비 화면의 경우 청킹을 통해 유저의 선택 과부하를 방지해야 합니다. 기존 인지 과학의 연구나 다양한 모바일 게임의 사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시사합니다.

 

1. 메뉴의 가짓수가 많으면 유저의 선택 과부하를 초래합니다.

2. 청킹을 통해 메뉴 그룹을 가능한 최소화(4~7종) 시키세요.

3. 메뉴 청크 간에는 시각적 그루핑이 명확해야 합니다.

4. 중요한 메뉴 버튼은 엄지 손가락이 닿기 쉬운 곳에 위치시키고 눈에 띄도록 디자인해야 합니다.

5. 만약 메뉴가 너무 많다고 느껴진다면 카드 소팅을 활용해 정돈해보세요.

 

[1] 선택의 심리학 (쉬나 아이엔가 저, 오혜경 역, 21세기 북스, 2012)

[2] “Brand Choice Behavior as a Function of Information Load: Replication and Extension”. Jacob Jacoby, Donald E. Speller and Carol Kohn Berning,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Vol. 1, No. 1 (Jun., 1974), pp. 33-42

[3] “The magical number seven, plus or minus two: Some limits on our capacity for processing information”. Miller, G. A. Psychological Review, 63(2), 1956, pp. 81-97

[4] 모든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알아야 할 사람에 대한 100가지 사실 (수잔 웨인 센크 저, 이재명-이예나 역, 위키북스, 2012)

[5] https://developer.apple.com/design/human-interface-guidelines/ios/bars/tab-bars/

[6] https://www.smashingmagazine.com/2016/09/the-thumb-zone-designing-for-mobile-users/

[7] http://bahns.net/2642273

 

*원문 출처 : https://brunch.co.kr/@jaehyunkim